인간의 의지와 무관한 불여의(不如意)의 고통이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다.

삶이 고통이 또 다른 이유는 “욕망과 집착”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집착이든 정치에 대한 집착이든 사물에 대한 집착이든. 집착은 욕망을 낳고, 욕망은 고통을 낳는다. 이러한 욕망과 집착으로 인해 종국에는 도시의 삐에로가 되어 스스로 시궁창에 빠져 몸부림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멀리 시베리아로 날아가 안식처를 찾아야할 “철새”들이 서대문에 안주하려고 몸부림치다 결국 홍제천에 오리 알 신세로 전략되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그들은 권력으로 사람을 부려기도 했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과거의 권력을 이용 이익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런 그들이 새로운 권력을 잡으려다 자신의 명예를 또 한 번 실추시키더니 스스로 시궁창이 되려고 몸부림 쳐보고 썩은 갯벌이 되려고 온 몸으로 냄새를 피우는 것 같아 보기가 너무 민망하기도 하다.
그들은 “씨”가 없고 “알맹이”도 없으며 “뼈대”도 없어 서대문의 삐에로나 탕아가 되어 시궁창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조직의 “룰” 속에서 다양한 의견이 표출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말(言)은 사람의 사상, 감정, 의사를 표현 전달하거나 이해하는 음성적 부호라는 사전적 의미를 굳이 기술하지 않더라도 언어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특히 말이라는 정치적 언어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사상과 행동을 표현하는 정치지도자의 경우 말은 곧 지도자의 리더쉽의 원천이기 때문에 정치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언어로 인해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한다. 정치지도자에게는 언제나 정적이 있기 마련이다. 정치지도자들이 여·야 모두 서대문구에서는 결정된 상태이다.
와신상담(臥薪嘗膽)과 절치부심(切齒腐心)이란 고사성어들이 증거 하듯, 정적의 존재는 자신을 강하게 한다.
정적이 강할수록 포기할 수 없듯이 강한 정적이 없으면 안일해지기 쉽다. 한편으로 정적도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경계가 모호해진다.
경쟁자가 “솔잎이 부스럭 하니 가랑잎은 할이 없습니다”라고 대꾸하면 본래 “솔잎은 아무소리를 내지않고 가랑잎이 요란을 피는 법인데 이치가 뒤바뀌었으니 가만히 입 다물고 있겠다”는 걸 은유(隱喩)적으로 표현 랄 것이다.
말로 상대방을 무색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을 사로잡는 것은 절묘한 비유이고 재치가 아니겠는가. 재치 있는 말솜씨는 정치인은 물론이고 일반인들에게도 큰 자산이다.
특히 자신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하고 몸값을 올릴 수 있는 요즘 세상에는 더욱 그렇다. 정치인들은 말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정치인들이 말을 제대로 가려하지 못한다는 것은 스스로 밥그릇을 걷어차는 것과 다를바 없다.
상처는 약을 바르면 아물기 마련이다. 그러나 말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그리 쉽게 아물지 않는다. 자신의 명예와 오늘을 있게 한 곳에 대한 배신이 얼마나 큰 것인가는 그들 자신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 자신들이 과거에 배신한 자들들을 얼마나 가혹하게 독설로 비판하겠는가. 재발 실사구시 차원에서 지난 일들을 뒤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 신이 아닌 이상 누가 누구를 탓하기보다 자신부터 냉철히 생각하면서 집착과 욕망을 버리고 이제까지 쌓은 명예를 버리고 이제까지 쌓은 명예를 위해 존경받을 수 있는 언어와 행동으로 처신하길 바란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서대문자치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