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을 바라보는 여성의 입장

최근 일어난 권력형 성범죄를 보면서 몇 해 전 들불처럼 번지다 잠잠해진 #미투운동의 악몽이 되살아난다. 그것도 서울시, 부산시, 충청남도 등 대도시 수장(守長)이 공무 중인 비서를 성추행 혹은 성폭행으로 전 국민의 분노를 일으켰고, 해외까지 기사가 뜨면서 국가적 수치를 남겼다.

성범죄는 크게 ‘성희롱, 성추행(강제추행), 성폭행(강간)’의 세 가지로 구분되며, 이는 모두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성적 행위를 통해 타인에게 정신적·육체적 손상을 주는 행위를 일컫는다. 디지털 성범죄는 박사방, n번방에서 아동 성 착취로 이어졌다. 공직사회의 권력형 성추행, 직장 내 성회롱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법적인 제재가 약하다 보니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반발로 ‘디지털 교도소’까지 만들어서 성범죄자들의 신상정보를 올리면서 공개하는 실정이다.
여성가족부의 2019년도 성폭력 안전실태조사 통계에 의하면 성범죄는 아는 사람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성적인 대상에게 호감을 주고 신뢰를 쌓는 등 피해자를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그루밍을 통해 관계를 형성한 후 성폭력을 시도하는 유형이다.
태초에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나눈 행위는 아름다운 사랑의 성행위로 그려진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나누는 섹스야말로 한 쌍의 조화로움으로 만드는 아름다운 행위이다. 모든 동식물도 암수로 구분되어 종족 번식을 위해 성행위를 통하여 대를 이어간다. 우주 삼라만상의 이치가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인간 역시 남과 여로 가정을 이루어 자식을 낳아 대를 잇고 있지만, 인간이 동식물과 다른 점은 바로 이성(理性)을 가진 감정의 동물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동식물들은 종족 번식을 하기 위한 발정기에나 짝을 찾고 꽃을 피워 벌을 유혹하고 열매를 맺는다. 이들은 날씨와 계절의 조건에 따라서 성행위를 위한 몸짓을 하지만 인간은 언제 어디서든 충동이 일어나면 성행위가 가능하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인간이 이들과 다른 점은 바로 이성적으로 통제하는 성적욕구 조절능력을 갖고 있는 점이다. 그런데 감정과 요구를 통제하지 못하고 충동적인 행동으로 평생 쌓아온 탑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사람이 많은 것은 왜일까?
얼마 전 극단적인 선택을 하여서 생을 마감한 서울시장의 소식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더군다나 그분은 필자와도 친분이 있는 분이었고 평소에 지켜본 모습에서 그런 비밀이 있었다는 것이 도무지 상상이 안 된다. 큰 포부를 갖고 육십 평생 바쳐온 삶이 한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아직도 그가 남긴 구질구질한 이야깃거리는 여전히 시끄럽다. 앞으로 손가락질받으며 살아갈 유족들의 고통은 얼마나 클는지, 본인은 죽음으로 마감하였지만 참으로 안타깝다. 오히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드러나는 피해자의 2차 피해 우려를 걱정하는 사람이 더 많다. 심지어 정쟁으로까지 쟁점화가 되어서 한동안 왈가왈부 말도 많을 것이다. 
이러한 권력형 성범죄야말로 국가적인 정책을 통하여 예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성범죄자들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물며 가정을 가진 사람이 딸 같은 여비서를 성적인 대상으로 여겼다. 비양심적인 행동을 하여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켜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한순간 흙탕물에 휩쓸려 버렸다는 것은 얼마나 비참한 결말인가.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계속 터진다면 이는 심각한 사회적 병폐가 된다. 
특히 권력형 성범죄는 남성 중심의 여성을 비서로 두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섬세함이 장점이 되겠지만 예전부터 비서는 여성이어야 한다는 그릇된 편견도 문제다. 손님 접대를 하고 차를 나르고, 하루 일정을 꼼꼼히 챙기면서 업무 중에 계속 곁에서 함께 한다. 가족과 지내는 시간보다 비서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많을 수 있다. 업무적인 이유로 함께 하는 시간이 많다 보면 아무래도 이성적 판단이 흐려지고 자기통제력이 약한 사람은 범죄인 줄 알면서도 쉽게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D.H로렌스의 『성과 사랑』에서는 현대인의 내면적 정신적 질환이란, 여러 가지 직관력이 병들고 위축한 상태라고 하였다. 병 든 직관력으로 인해 미적 감각이 심하게 상처를 입게 되고 최고의 것을 모두 놓치고 만다는 것이다. 직관력이 병들어 판단력이 흐리다면 이게 바로 질병이 아니고 무엇인가? 성범죄자는 정신적 질환자여서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치료해야 함에도 피해자의 고통은 아랑곳없이 스스로 치부를 드러내지 못하는 점이다, 아무리 인품이 빼어나고 학식과 덕망이 있다 하여도 성추행을 저지르게 되면 범죄자로 살아야 한다. 명예도 가족도 다 잃게 됨을 알면서도 그 늪에서 긴 시간을 헤어나지 못하였다 함은 바로 정신적인 질환을 치유 받지 못함에서 비롯된 거라 생각된다.
다음으로 여성을 성적 소비물로 인식하려는 남성들 때문에 성의 물신화가 성범죄로 빚어지는 점을 꼬집을 수 있다. 돈이 많으면 여자의 성도 살 수 있다는 그릇된 오판으로 예나 지금이나 성범죄로 이어진다. 현실 속 여성으로부터 도주하여 다른 여성에게 빠져드는 것을 자기합리화로 여기는 점도 문제다. 즉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 마디로 내 주변에 있는 여성이 내 아내이면서 내 딸로 생각한다면 어찌 감히 성적 호기심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될는지 생각해 볼 점이다.
성범죄의 사각지대 또한 많다. 직장과 가정 안에서의 성폭력,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보호시설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종교인들의 성폭력 등이 드러나고는 있지만 아마도 우리가 모르는 사각지대가 수없이 많을 것이다. 심지어 성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사소한 행동이 성폭력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국가에서는 앞으로 좀 더 강화된 성교육을 초.중.고에서 단계별로 시켜야 함 물론 직장 내에서도 연 몇 회 정도는 전문가를 통하여 의무적인 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스마트폰의 출현과 동시에 SNS나 온라인에서 음란 동영상이나 사진을 무료로 퍼 나를 수 있다. 안전 거름망 없이 떠도는 숱한 야동들로 어린이와 중.고교 청소년들은 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터득하기 전에 안 좋은 영상을 쉽게 접하게 된다. 성적 호기심 많은 청소년기에 이런 영상들을 먼저 접하게 되면 ‘성인지 감수성’을 올바르게 형성할 수 없다. 
성(性)은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나누는 가장 아름답고 정직한 행위여야 하고, 남에게 손가락질을 받거나 비난받아서는 안 되는 성스럽고 떳떳한 행위여야 한다. 
따라서 건전한 성문화에 대한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가정에서부터 학교로, 학교에서 사회로 점점 자라나는 성장 과정에 있어서 인성교육 다음으로 중요한 교육이다. 올바른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할 아이들이 이러한 어른들에게서 무얼 배우고 자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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